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천도교 삼수교구장인 조완오는 3월 13일 조완규·조완숙(趙完淑) 등을 집에 불러서 서울 및 각지의 소식을 전하고 삼수에서도 시위를 벌일 것을 제의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조완오의 뜻에 찬성하고 죽기를 맹세코 일제와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그들은 3월 15일 밤 중평시장에서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태극기 제작을 서둘렀다.
3월 15일 저녁 조완오를 비롯한 주도인물들은 중평장에 나아갔다. 그러나 준비 기간이 너무 길고 연락이 충분히 취해졌다는 점이 오히려 만세시위운동에 대한 일제의 경계를 불러 일으켰다. 많은 군민들이 아침부터 모이자 일본 헌병이 이를 탐지하여 방비태세를 갖추고, 중평장에서 주도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모두 잡아갔다. 19명의 주도인물의 굳은 결의와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만세 한번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전부 잡혀갔다. 중평장에 만세를 부르기 위하여 모여든 300여 명의 군중들도 일본 헌병에 의하여 해산당하고 말았다.
조완규는 삼수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7. 1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