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 등 이른바 민족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그는 고향인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龍門面) 광탄리(廣灘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30일 광탄리에 군중들이 모이자 그는 독립기를 앞세우고 군중들을 향하여 “독립은 천운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모두 본적지에 귀국하라. 예컨대 1개의 계란이라도 쌍계이면 2개의 계란에서 2개의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니, 1국으로 함은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연설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절대 일본에 병합될 수 없음과 독립의 필연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어 그는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 1919. 7. 2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491∼492면
- 楊平獨立運動史資料集(楊平文化院) 297∼29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8권 101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6. 16)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