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황해 서흥(瑞興)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황해도 서흥군 도면(道面) 능리(陵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흥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3월 10일 도면 능리시위이다. 도면 능리의 독립만세운동은 두무리(杜茂里) 교회의 전도사인 김성황(金成惶)이 평양에서 윤종식(尹宗植)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받아 가지고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김성황은 선언서를 교회에 전달하고, 박이도(朴履道)·원용목(元用睦) 및 학교교사 원용팔(元用八) 등과 연락하여, 능리 장날인 3월 10일(음 2월 9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계획한 시위는 일본 헌병대에 의해서 사전에 발각되어 무산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사들은 사태를 수습하고, 시위를 재개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김두순(金斗淳)·김종철(金宗喆) 등은 도면 송화리 서당의 운동장에 주민들을 모아서 취지를 설명하고 능리로 진입하였으며, 소사면(所沙面) 방곡리(防谷里)의 서당교사 원광흠(元光欽)은 학생들과 함께 능리장터로 나왔다.
여기에 정학주를 비롯한 김두익(金斗益)·구성빈(具聖彬)·김원보(金元甫) 등이 앞장서서 오후 4시경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또한 정학주는 교회에서 여신도 10여 명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였으며, 시장과 면사무소 등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657∼65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59∼62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