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7일 오후 7시 충청남도 공주 앵산공원 야소교회당 앞에 약 150명의 군중이 시위를 위해 모였다가 해산했다. 다음날인 3월 8일 충청남도장관 구와하라(桑原)가 공주‧임천‧부여‧논산에서 집회 금지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고종의 국장(國葬)을 참례한 박장래(朴璋來)가 공주로 가서 학생들에게 만세시위를 권유했다.
이어서 3월 14일 매일신보(每日申報)로 3.1운동 상황을 인지한 황병주(黃秉周)가 공주 신상면 유구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이때 충청북도(忠淸北道) 음성(陰城) 사람인 정희준도 유구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군중들을 향해 “너희들도 조선인이 아니냐! 어째서 만세를 부르지 않느냐!”고 외치며 만세운동을 촉구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
이에 유구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 주도자 중 한 명인 황병주를 체포하여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에 정희준을 비롯한 시위대가 황병주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유구주재소 숙소와 사무실을 공격하는 등 일제의 탄압에 강력히 저항했다.
이처럼 정희준은 공주 유구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3월 28일 구류되었다. 5월 30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예심종결결정에 의해 공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어 6월 16일 징역 1년‧벌금 30원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하여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 1919. 6. 16)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3. 17, 6. 19)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08~1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