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18일경, 경북 영일군(迎日郡) 송라면(松羅面) 대전리(大田里) 교회의 윤영복(尹永福)은 신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는 사실을 알고 청하면 덕성리(德城里) 교회의 오용간(吳用干)과 만나 논의한 끝에 3월 22일 덕성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시위현장에서 사용할 대형 태극기 1매와 소형 태극기 20매를 만드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22일 오후 1시경, 윤영복(尹永福)과 오용간(吳用干) 등은 장터로 나아가 시위군중을 주도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때 그는 시위대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행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을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19. 4. 28)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韓國獨立史(金承學) 하권 26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41면
- 三·一運動實錄(李龍洛, 1969) 735∼73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