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19년 3월 28일 김포군 월곶면(月串面) 조강리(祖江里)·갈산리(葛山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경 김포군 양촌면(陽村面) 누산리(樓山里)에 사는 박충서(朴忠緖)가 서울에 유학 중 3·1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3월 22일 양촌장날에 박충서를 비롯한 박승각(朴勝珏)·박승만(朴勝萬)·안성환(安聖煥)·김태순(金泰順) 등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같은 날 월곶면 고양리(高陽里)에서는 성태영(成泰永), 군하리(郡下里)의 백일환(白日煥) 등의 주도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렇듯 김포군의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양촌 장날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던 조강리 민창식의 주도로 조강리·갈산리의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다. 여기에서 정인교는 민창식·최우석(崔禹錫)·윤종근(尹鍾根)·윤영규(尹寧圭)·박용우(朴容雨) 등과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하고, 3월 28일을 거사일로 정하여 동리 주민들을 규합하는 등 거사준비를 진행시켰다.
거사 당일인 3월 28일 밤, 정인교를 비롯한 주동자들은 주민 수 십명과 함께 동리(洞里)의 함반산(含飯山)에 올라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9. 6. 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7. 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5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25∼32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