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일본 동경철도학교 재학중인 1941년 12월에 항일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그는 동그룹의 주도역할을 맡았던 현창석(玄昌碩) 등과 함께 여러차례 모임을 가지며 독립의식을 길렀는데, 이들은 태평양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국제정세 속에서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이때를 독립의 기회로 보고 조선민중을 규합하여 일제히 봉기할 것을 계획하였다. 또 이같은 계획은 국내와도 연결이 이루어져 공주(公州)지역에서도 집단을 결성하고 서로 호응하였다.
이들이 계획한 활동방략은 주요건물의 파괴 및 식량창고의 방화, 수도 및 도로를 파괴함으로써 일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회원을 활동구역을 각기 분담하고 이러한 계획을 추진시켜 나갔는데, 도중에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42년 3월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모진 고문으로 인하여 정신장애를 일으켜 동경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고초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 8권 84·8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355·1358면
- 특고월보(1943. 6월분) 108∼11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184·1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