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1919년 8월 추도일(秋道一)·강희성(姜熙成) 등 1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독립부인청년단(大韓獨立婦人靑年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동단은 이후 독립운동자금의 모집과 독립투사들에 대한 편의제공, 투옥지사와 가족들의 후원활동을 폈다.
한편 박치은은 1919년 8월경 김봉규(金琫圭)·곽치문(郭致文)·나진강(羅鎭綱)·김국홍(金國洪) 등과 함께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였으나 회원들이 붙잡혀 활동이 위축되자 다시 동년 11월경 대한독립대동청년단(大韓獨立大同靑年團)을 조직하였다.
동단은 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활동 중이던 대한독립광복군사령부(大韓獨立光復軍司令部)와 연계하여 권총을 입수한 후 대동군의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는데 박치은은 동단에서 무기와 군자금의 보관을 담당하였다.
그러던 중 박치은은 1921년 5월 일경에 붙잡혀 1922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생후 1개월된 영아(嬰兒)가 옥중에서 사망하는 비운을 겪었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29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64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41·534·538·554·9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