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5일 의성군 안평면(安平面) 대사동(大司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대사동 교회의 영수인 이종출(李鍾出)은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교회 인사들과 함께 일요일인 3월 15일에 거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정갑이는 이종출·김옥돈(金玉頓)·이양준(李良俊)·이북술(李北述) 등과 함께 3월 15일 낮 예배를 마친 후, 시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동일 오후 7시경 대사동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밤이 늦도록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자진 해산한 이들은 다음날인 3월 16일 밤에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대사동을 출발한 100여 명의 시위대가 기도동(箕道洞)을 거쳐 창길동(倉吉洞)까지 행진하였다. 3월 17일에는 오후 8시경 150여 명의 시위대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화령동(花寧洞)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3월 18일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과 더불어 안평면의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시위하였다. 정갑이 등은 시민들과 함께 안평면의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시위하였다. 이들은 3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 동안 주로 밤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자진 해산하였으나, 3월 19일에는 낮부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 400여 명은 안평주재소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이웃 마을인 도리원(桃李院)까지 진출하여 만세시위를 확산시켰다. 이에 일제는 의성경찰서의 병력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탄압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5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07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