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9년 11월 광주(光州)에서 학생운동이 발발한 후 전국의 학생들이 반제국주의 항일운동을 위해 일어났다. 당시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이인찬은 같은 학교 박우양 등과 청주공립농업학교 학생 박노섭 등을 만나 광주학생운동 지지운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조회시간을 이용해 두 학교가 연합해 지지운동을 하기로 협의했다.
1930년 1월 20일 이인찬은 학교의 등사판을 가져다가 이범승과 함께 박우양의 하숙방에서 비밀리에 전단을 등사했다. 이튿날인 1월 21일 오전 9시 30분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조회가 끝나자마자 1~4학년 학생 270여 명이 광주학생운동 지지를 위해 만세를 외치고 격문 1,000여 장을 뿌렸다. 청주공립농업학교 학생 230여 명도 이에 동참했으며 청주고등여학교 학생 30여 명도 동맹휴학으로 호응했다. 이에 일본 경찰은 50명~60명의 학생을 체포했다.
한편 1934년에는 보통학교 교원인 유필열과 독서회를 조직하고, 일어(日語) 전용 방지, 우리말 쓰기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35년 유필열에게 친목계를 통해 모금한 800원을 건네고 북만주에서 독립군양성 학교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
이인찬은 광주학생운동 지지운동으로 체포돼 1930년 2월 14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다음날 석방됐다. 이로 인해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중도 퇴학했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1. 21, 1. 22, 1. 26, 2. 6, 2. 17)
- 내수초등학교80년사(내수초등학교총동문회, 1998) 79~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