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서울 보성고보 4년생 전옥결은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 약 200매를 교부받았다. 3월 1일 여러 학생과 함께 인사동과 청진동 일대에서 배포하고 파고다공원에 모였다. 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4일 배재고보 기숙사에서 학생대표 한위건 등과 ‘3월 5일에 제2의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했다. 이들은 이때 받아온 『독립신문』 제3호를 인쇄하여 서울 곳곳에 뿌렸다.
4월 20일부터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등사판으로 「임시정부선포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취지서」 등을 인쇄했다. 전옥결은 하얀 천에 ‘국민대회’ 또는 ‘공화만세’라고 쓴 기(旗)를 제작하고 ‘국민대회’라고 쓴 간판을 만들었다. 23일 서린동 봉춘관에 간판을 걸고, 인쇄물을 서울 각 곳에 뿌렸다. 26일까지 『독립신문』를 인쇄하여 배포하였다.
체포된 전옥결은 12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1920년 3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9월 6일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0. 3.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174~176, 182, 187, 2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