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1일에는 수진면 이화동(梨花洞) 주민 400여 명이 운천동(雲川洞) 수진면사무소에 몰려가 만세운동을 벌였다. 장효원은 이화동에서부터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백낙현 등과 함께 운천동 구장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구장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 헌병과 친교를 맺는 등 친일적인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밤 11시 집을 에워싸고 구장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집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 옆의 도축장도 불태웠다. 의주로부터 일군 10명이 출동하여 헌병과 함께 총을 쏘며 시위를 진압했다. 4월 2일에도 만세 시위가 이어졌다. 2,000명 군중이 수진면사무소에 몰려가 연설를 하고 만세를 불렀다. 출동한 헌병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이날 2명이 죽고 11명이 부상하였다.
이러한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된 장효원은 이른바 ‘소요(騷擾)·방화(放火)·살인미수(殺人未遂)’로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상고하였다.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6. 2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