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1919년 3월 14일 경북 칠곡군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인동에서는 3월 12일과 3월 14일에 두 차례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처음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이곳 유지 이내성(李乃成)·이상백(李相柏)을 찾아가 전달함으로써 추진되었다. 그들은 3월 12일을 거사일로 작정하고 그 준비를 진행시켜 나갔다. 이상백·권용섭(權龍燮) 등은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3월 11일에는 이영식·이영래·임점석 등이 의거 당일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장준현은 거사 당일인 3월 12일 오후 8시 뒷 산록에서 3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는데, 이상백·이영식이 교대로 연설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시위는 출동한 일경에 의해 곧 해산되고 말았다.
인동의 만세시위는 대구 계성학교 학생인 김도길(金道吉)에 의해 다시 추진되었다. 김도길은 동교생인 박풍술(朴風述)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으고, 거사일을 3월 14일로 정하였다.
일제의 검거망을 피한 장준현은 이들과 함께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한 뒤, 3월 14일 오후 9시 마을 뒷산 기슭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3·1運動實錄(3·1同志會, 1985) 下卷 202∼20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1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