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대구농림학교 재학중인 1939년에 일제의 식민정책인 일어사용·창씨개명·황국신민화 등에 반대하여 국학서적을 수집·탐독하면서 민족의식을 길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동지를 규합하여 자신의 하숙집을 밀회 장소로 정하고 민족전통 및 한글연구를 통하여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였다고 한다. 그후 1941년에 동교를 졸업한 그는 영일군농회 기수로 근무하면서, 계속 후배들과 연락을 갖고 항일의식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42년 봄에 대구 농림학교에서 한·일 학생간의 유혈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때 그는 그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어 붙잡혔다고 한다. 붙잡힌 후 그는 1년여동안 미결수의 상태로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이로 인하여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1943년 7월에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 나왔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45년 3월에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
- 제적등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