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임팔룡은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송산면사무소(松山面事務所)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송산면 사강리(沙江里)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6일 일어났다. 오후 5시 송산면 면사무소 근처에서 임팔룡을 비롯한 주민들은 태극기를 내걸고 대한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3월 28일 오후 2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군중은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과 면서기에게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종용하였다. 뒤따라온 일본 경찰 야구광삼(野口廣三)이 시위 군중 가운데에서 홍면(洪冕) 외 두 명을 주재소로 끌고 가려고 하여 승강이가 벌어졌다. 경찰은 결국 권총으로 홍면을 쏘았고 총알이 홍면의 등에 명중하였다. 흥분한 군중은 노도와 같이 밀려가며 순사를 쳐죽이라고 절규하며 일본인 경찰에게 덤벼들었고 경찰은 사강(沙江)거리 경찰관주재소로 달아났다. 임팔룡 등 20여 명의 군중들은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며 쫓아갔다. 돌을 피하다가 경찰이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군중은 돌과 몽둥이로 경찰을 처단했다.
다음날부터 경찰은 닥치는대로 주민을 끌고 가서 수원경찰서에서 고문을 자행했다. 홍면은 등에 관통상을 당했으나 다행히 생명을 건졌고, 홍면의 장인은 고문을 받으면서, "나의 사위가 권총에 맞았는데 가만히 있겠느냐? 우리는 원수를 갚기 위하여 당연히 가담한 것이다."며 당당히 대항하였다.
체포된 임팔룡은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 위반, 살인으로 징역 7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1920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고, 그는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8월 25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5.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378~39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5) 21권 222~225, 272~27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5) 22권 94~96, 217~218, 87~288, 317~31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65~167면
- 刑事控訴事件簿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4. 7)
- 東亞日報(1920.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