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함흥군 3.1운동은 기독교와 학생이 주도하였다. 2월 28일 함흥고등보통학교·함흥농업학교·영생중학교 3~4학년으로 구성된 함산학우회 회원 12명은 함흥군 중하리(中荷里) 기독교 예배당에 모여 3월 3일 함흥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역할을 나누었다. 이들 가운데 한영호(韓泳鎬)의 연락을 받은 임의식은 강흥락(姜興洛) 등과 함께 함흥농업학교 기숙사에서 학생 수십 명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3월 3일 새벽 일제의 대규모 검속으로 함산학우회 간부들이 모두 체포되었지만, 오후가 되자 함흥시장에는 1,00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 임의식은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임의식은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불복, 공소를 제기하였지만 1919년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89~290면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7. 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