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대구에서의 만세시위는 3월 3일경 이갑성(李甲成)이 「독립선언서」를 이만집에게 송부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만집은 김태연(金兌鍊)과 계성학교(啓聖學校) 교사인 김영서(金永瑞)와 의논하여 장날인 3월 8일 오후 3시를 기하여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8일 오후 3시 시장에 모인 군중 속에서 이만집은 “지금은 한국이 독립할 시기로 각자가 한국독립을 희망한다는 것을 외치면 자연히 독립을 할 수 있으므로 만세를 외쳐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고, 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은 이에 호응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임용한도 시위군중 700~800명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본정(本町), 경정(京町)을 거쳐 동성정(東城町)으로 시가행진을 하였다. 3월 8일 대구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19년 12월 2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대구복심법원:1919. 5. 3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19.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