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및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주도자들은 계획에 따라 광주교(光州橋) 밑 천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천변을 따라 냇가로 올라와 작은 시장으로 진출하여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그곳을 출발하여 서문통(西門通)을 경유하여 우편국 앞에 이르러 왼편으로 돌아 본정통(本町通)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누문리(樓門里) 방면에서 농업학교 학생 등 수백 명의 시위군중이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그는 이날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19. 4. 30)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