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평남 강서군(江西郡) 반석면(班石面) 사천(沙川)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4일 원장(院場) 장날 합성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10시에 독립선포식을 치르고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원장시장으로 행진하였다. 장에 모였던 사람들도 합류하여 군중의 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러자 반석교회 장로 최능현(崔能賢)과 모락장교회 목사 송현근(宋賢根)이 모락장[沙川場]의 시위운동이 사전에 발각되어 동지들이 헌병대 유치장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들을 구출하자고 호소하였다.
시위대는 유치장에 갇혀있는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해 원장(院場)을 출발해 모락장으로 나아갔다.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고 나팔수들이 선두에서 나팔을 불며 청년들이 앞장서고 긴 행렬을 이어갔다. 시위행렬의 선두가 사천 시장으로 들어갔을 때 일본군은 실탄사격을 가했다. 이에 군중은 의분을 금치 못하고 맨주먹으로 일본헌병에 대항하였다. 그 과정에서 몇 사람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해산하지 않고 총탄을 쏘아대는 헌병주재소장과 보조원을 붙들어 처단하고 구금 중에 있던 동료들을 구출하였다.
사천 투쟁에서 13명은 현장에서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중경상자들은 40여 명에 달하였다. 일제는 즉각 보복을 개시하여 경찰과 군대가 대거 출동, 원장·반석·사천 등지를 중심으로 4백여 명을 무차별 검거했다.
시위 후 체포된 이준배는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살인·방화·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9~412면
- 驥驢隨筆(宋相燾) 274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12. 6)
- 假出獄關係書類(국가기록원)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635~6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