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2월 28일 함흥군 함흥면 중하리(中荷里) 교회에 신자, 학생, 일반인들이 모였다. 이들은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고 준비위원을 선임하는 한편 독립운동비로 각자 5원에서 100원을 갹출했다. 3월 3일 장날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했다. 3월 1일부터 영생중학교 등 함흥 읍내 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3일에 있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함흥고등보통학교 4년생 이재백도 같은 학교 동급생들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3일 정오 무렵 이들은 함흥 읍내 대화정에서 수백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읍내와 중하리, 하동리, 우시장과 정차장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체포된 이재백은 7월 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5집 1009~10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