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평산(平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의 세곡면 누천리(細谷面漏川里) 장날을 이용하여, 최헌영(崔憲永)·이대성(李大成)·이원영(李元永)·민홍식(閔弘植)·신상균(申祥均)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곳에서는 이보다 며칠 전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받아왔다.
그는 4월 2일 7백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대열이 헌병분견소 앞을 지날 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자, 분노한 시위군중은 분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하였다.
그러나 헌병의 잔악한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하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이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2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614·6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