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위춘은 1919년 3월 5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 교
부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는 용동교회와 오산학교 교
직원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31일 정주읍에서 열릴 대대적인 시위
운동과 때를 같이 하기로 했다. 이 지역은 학원도시였기 때문에, 오산학교의 거취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오산학교 학생들이 당일
행동을 개시하자 주변 촌락에서 시위군중은 자꾸 불어갔다. 시위대열이 고읍역
에 이르렀을 때 군경이 출동하여 관련자를 검거하였다. 일제는 이날의 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4월 2일, 이승훈이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던 오산학교 교사, 기숙
사, 그리고 용동교회를 방화하여 전소시켰다. 당시 오산학교에는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서 휴직중에 있던 조철호(趙喆鎬)가 체육을 담당하고 있었
다. 그는 그 뒤의 행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국자요 선각자였다. 이 시위와 관
련하여 체포되어 징역에 처해진 사람은 조만식(오산학교 교장), 박기준(朴基濬,
교사), 심재덕(沈在德, 교사), 이기칙(李基則, 학생), 이위춘(의생) 등이었다.
1919년 3월 5일 이기칙, 이정급(李貞伋)이 등사용 도구 및 선언서 초본을 이위
춘의 집으로 가지고 와서 등사를 요청하였고, 이위춘은 이들과 함께 선언서 150
매 가량을 인쇄하였다. 다음날 6일 이위춘은 체포되었고 의주지방법원에서 징
역 1년을 받고 다시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여 1919년 5월 24일 징역 8월을 받았
다. 그는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859~86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42면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