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유림(儒林)의 고장에서 태어난 그는 항일 의식이 남달리 고취되어 일찍부터 고향인 안동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國權)이 완전히 상실 당하자 국내에서 더 이상 표면화된 항일독립운동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해외로 이주하여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였다. 이에 1912년 4월 만주(滿洲)로 이주하여 봉천시(奉天市) 소남문(小南門)에서 독립운동의 근거지인 천성여관(天城旅館)을 경영하면서 국내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한편으로 무장독립운동(武裝獨立運動)에 필요한 폭탄을 제조하여 만주 일대의 독립군에게 제공하는 동시에 국내에도 이를 제공하여 일본군의 관사(官舍) 관청 등의 폭파임무를 함으로써 일경(日警)들을 교란시켰다. 1919년 9월 15일 비밀리에 폭탄을 제조하던 중 취급상 부주의로 인하여 그가 경영하던 천성여관이 폭발 당하자 일경으로부터 국내와 만주 등지에 폭탄을 제공한 혐의자로 지목을 받아 수배 당하였다. 이에 상해로 옮아 상해의 임시정부(臨時政府)의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임시정부에서 그는 자금모집(資金募集)을 담당하여 국내를 비롯한 해외 등지로부터 적극적인 모금운동을 하였다. 1920년 1월 상해의 임시정부의 명령을 받고 자금모집을 목적으로 경상북도 상주(尙州)에 들어와 부호 지주 농민 등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모집을 하여 수차에 걸쳐 상해의 임시정부로 전달을 하였다. 동년 2월 29일 봉천시 폭발물사건의 주동자로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정보가 노출되어 출동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의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적극 앞장섰다. 1922년 2월 만주 길림성 군정서(吉林省軍政署) 소속의 무관학교운영자금(武官學校運營資金) 모금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53, 268, 269, 272, 27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5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5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