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파고다 공원에서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러한 소식은 곧바로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이를 접한 이성태는 1919년 4월 1일 괴산군 청천면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리하여 청천시장 장날이 되자 시장의 군중들에게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그 결과 3천 여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했다. 군중 일부는 헌병주재소로 진출하였고 시위 지도자 12명이 체포되었다.
4월 7일 만세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성태는 시위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헌병주재소에 제출한 마을 구장 이규하(李圭夏)를 찾아가 꾸짖었다. 이처럼 이성태는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시위 거부자를 비판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 청주지청(淸州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1919년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과 7월 24일 고등법원(高等法院)의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1919. 5. 10)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6. 13)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7. 24)
- 판결이유서(判決理由書)(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1919. 5. 13)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사건기록보존부(事件記錄保存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82~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