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대구 남성정(南城町) 장로교 예수교회 목사 이만집(李萬集)은 3일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대구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만집은 동부 남산정 장로교 예수교회 조사 김태련(金兌鍊) 및 동부 신정 장로교회 장로이자 계성학교 교사인 김영서와 협의한 끝에 3월 8일 오후 3시를 기하여 동부시장에서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정재순 목사, 정광순 장로, 계성학교 교사 백남채(白南埰) 외 3명을 동지로 규합하여 이들과 함께 예수교 신도와 계성학교 학생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8일 오후 3시경 시장정에 집합한 이들은 이만집이 군중을 상대로 연설을 한 후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군중 7~800여 명과 함께 한국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장터를 출발하여 본정(本町),경정(京町)을 경유하여 동성정(東城町)으로 행진하였다.
이 시위에 동참하였던 이선희는 1920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裁判所)
- 車美理士 外 一名에 대한 布哇旅券 下付出願에 관한 건(외무성 통상국장: 1925. 1.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 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66~127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352면
- 受刑人名簿(大邱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