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30일 하오 2시경 신경구(申敬求)가 미원리 시장 네거리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이 일제히 호응하면서 만세소리가 시장을 진동시켰다. 일본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 해산시키려고 신경구를 체포하여 주재소에 유치하자 시위군중은 분격하여 주재소로 몰려갔다. 1,000명이나 되는 시위 군중은 목이 터져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고,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서구·최봉원(崔鳳源)·이성호(李聖浩)·신성휴(申聖休) 등은 “만세를 부르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이냐? 왜 사상자를 내었느냐? 주재소를 전멸시키겠다”고 하면서 군중들을 이끌고 구금자 구출을 위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청주에서 출동한 보병 7명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1명이 순국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1명이 체포되었다.
이서구는 1919년 3월 30일 미원면 미원시장에서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구금자 구출을 위하여 주재소를 공격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1919년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방해 공소사실만 무죄를 인정하여 상고하였다. 1919년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1919. 5. 5)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19. 6. 23)
- 판결문(고등법원:1919. 8. 16)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108~1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