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경기도(京畿道) 수원(水原)에서는 1919년 3월 25일 장날 수원 읍내 시장에서 청년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2일 밤 장안면과 우정면 면내 각처의 산 위에서 주민들이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3일 오전 장안면 석포리(石浦里) 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이 면민들에게 면사무소 집결을 통지하고 우정면 주곡리(珠谷里)에서는 차희식(車喜植)·장소진(張韶鎭) 등이 통지를 받고 주민들에게 알렸다. 차병혁 등이 장안면사무소(長安面事務所)에 가서 면장 김현묵(金賢默)을 설득시켜 독립만세에 참가시켰다. 이어 집결한 200명의 군중들이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군중은 1,000명에 이르렀다. 오후 3시경 우정면사무소(雨汀面事務所)에서도 면사무소를 부수고 한각리(閑角里)를 거쳐 화수리(花樹里)로 향했다. 오후 5시경 화수경찰관주재소(花樹警察官駐在所)에서 2,000여 명의 군중들이 주재소를 파괴하고 경찰을 응징하였다.
수촌리(水村里)에서는 20대 초반인 이봉구가 백순익(白順益)·김명우(金明右)·김교철(金敎哲)·이학서(李鶴西) 등 주로 30~40대의 중장년층 인사와 함께 참가하였다. 그는 주도 인사들과 함께 군중들을 이끌어 우정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막대기를 현관 유리창 등 사무소를 파손하고 사무실 탁자, 의자 등 집기류를 내던져 파기하며 공문서 등을 밭으로 가져가서 소각하였다. 또한 화수리 주재소에서도 군중들에 솔선하여 주재소를 공격 파괴하는 활동을 하였다. 주재소가 불에 타기 시작하자, 천단풍태랑(川端豊太郞) 순사가 사무실을 나와 30여 명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여 3명을 쓰러트리고 도주하였다. 이에 군중들이 순사를 추적하여 약 3정(丁) 떨어진 북쪽의 낮은 산에서 이봉구가 3촌(寸) 정도의 밤나무 막대기로 순사의 뒷머리를 3번 내리쳤다. 이어 이순모(李順模)가 소나무 막대기로 순사의 허리 부분을 쳤고 차인범(車仁範)도 막대기로 다리를 가격했다. 군중들도 합세하여 순사를 구타하고 공격하여 포살(捕殺)하였다.
이봉구는 4월 3일 수원 장안면, 우정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피신하여 1921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15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 소요(騷擾), 살인(殺人)’ 죄목으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2019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1. 4. 15)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5) 제21권 85~87, 179~1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