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기생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2월 말, 김성일(金聖日, 예명 月姬)과 문응순(예명 月仙)은 고종의 인산(因山)을 봉도하기 위해 상경하여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해주로 돌아왔다.
3월 10일 해주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문응순은 3월 하순, 김성일,김용성(金用性, 海中月),문재민(文載敏, 예명 馨姬),옥운경(玉雲瓊, 예명 彩珠) 등과 거사를 논의한 후 4월 1일 이를 실행하기로 하였다. 김성일과 문응순이 직접 한글로 독립선언서를 지어 5천장을 인쇄하는 한편, 태극기를 손수 제작하여 준비를 마쳤다.
4월 1일 오후 2시경 이벽도는 문응순 등 해주 기생들과 함께 남문 쪽을 향해 나가며 태극기를 흔들고 전단을 뿌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료 기생들을 비롯한 군중들이 모여 들어 행렬은 3,00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 행렬은 재판소를 거쳐 동문으로 들어와 다시 종로로 향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문응순 등 주동자 5명은 붙잡혀 종로경찰서로 끌려갔다. 이들은 종로경찰서 앞에 이르자, 돌을 집어 유리창을 부수는 한편, 다시 만세를 부르는 의기를 보였다. 경찰서에서 이들은 심한 악형으로 온 몸에 멍이 들고,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 일로 체포된 이벽도는 1919년 6월 28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19. 4. 5, 7. 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8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31~2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