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7일 대구(大邱) 계성학교(啟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이내성은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인동면 진평동의 이상백을 찾았다. 이상백의 집에서 이범성·이내성·이영식이 의논하여 3월 12일 만세시위를 하기로 하고 이상백·권용섭(權鏞燮)은 「독립선언서」를 필사하였다. 3월 11일에는 이상백의 집에서 만세시위 당일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들은 3월 12일 오후 8시경 동리 뒷산에서 동민 약 200명을 모아놓고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월 14일 오후 9시경 다시 동리 뒷산에 모여서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다가 일본 군경에 의해 주동 인물 8명이 체포되고 군중은 강제로 해산되었다.
이범성은 인동면의 3월 12~14일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1919년 4월 7일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북경찰부, 1934) 40면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3권 388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308~3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