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창성(昌城) 사람이다.
1923년 만주로 건너가 통의부(統義府) 제6중대에 입대하여 군사교육을 받았다. 1924년 국내에 들어와 창성(昌城), 벽동(碧潼) 등지에서 수천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로 돌아오던 도중 일경과 조우하여 수차례 교전을 하였으나 무사히 귀대하였다.
1926년 9월 1일에는 유하현(柳河縣) 쾌태무자(快太茂子)에서 밀정인 신한철(申漢哲)을 비롯하여 그의 가족 5명을 사살하였다.
1928년에는 정의부(正義府)의 재향군인이 되어 유하지방 공소 제6구장(公所 第6區長)으로 활동하던 중 일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그는 결국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29년 9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위반·강도·살인공갈죄로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207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9면
- 동아일보(1929. 2. 6,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