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4월 강원도 (水原道) 강릉군 (江陵郡) 정동면 (丁洞面) 의 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학생들을 규합 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려다가 사전에 발각 체포되어 태 (笞) 90도 (度) 를 받았으며 이후 신문기자로서 1927년 강릉지역의 기자들을 중심으로 강릉철필단 (江陵鐵筆團) 과 보도단 (報道團) 을 조직하고 임시의장 등을 맡아 월남 (月南) 이상재 (李商在) 의 추도회 (追悼會) 와 신문관련 강연회를 개최하고 영동기자대회 (嶺東記者大會) 를 개최하여 전선기자대회 (全鮮記者大會) 의 개최를 촉구하는 등 활동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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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 강릉(江陵)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강릉군(江陵郡) 정동면(丁洞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당시 감리교회 목사인 안경록(安慶祿)을 중심으로 강릉지방 청년들과 강릉 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계획되었다. 당시 보통학교 4학년이었던 이명의(李明儀)는 학생들을 선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이일이 4월 1일에 발각되면서 주동자들과 함께 붙잡혀 1919년 4월 강릉경찰서에서 태(笞) 90도를 받았다.
이후 이명의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1927년 강릉지역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 강릉철필단(江陵鐵筆團)과 보도단(報道團)을 조직하고, 임시 위원장을 맡았다. 이명의는 여기서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의 추도회와 신문 관련 강연회를 개최하고, 영동기자대회(嶺東記者大會)를 개최하여 전선기자대회(全鮮記者大會)를 촉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90面
- 每日申報(1919. 4. 24)
- 江陵 3·1獨立萬歲運動史(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1999) 90面
- 東亞日報(1927. 9. 5·16)
- 朝鮮日報(1927. 4. 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