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전남 광주군(光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주 자혜병원(慈惠病院)의 안마사로 일하던 시각 장애인으로, 광주 읍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ㆍ숭일학교(崇一學校) 등 광주지역 학생들과 기독교인, 그리고 군민들이 함께 일으켰다. 일반 시민의 참여는 서정희(徐廷禧)가 맡고, 숭일학교 학생은 최병준(崔炳俊), 수피아여학교 학생은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이 맡았다.
3월 10일 오후 2시경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서 김복현(金福鉉)ㆍ김강(金剛)ㆍ서정희 등의 선언서 배포를 시작으로 1,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달근도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기각되었다. 1919년 10월 28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 1919. 4. 30)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 1919. 8. 13)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10. 27)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執行原簿
- 受刑人名簿
- 재소자신분카드
- 每日申報(1919. 4. 18, 5. 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59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185~1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