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5일에 양주군 와부면(瓦阜面) 송촌리(松村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 와부면의 만세운동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정성(李正成)·이춘경(李春經)·김정하(金正夏)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거사일을 3월 14일로 정한 주동자들은 동지를 포섭하는 한편,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하고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4일에 이들은 미리 준비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러한 만세 열기는 3월 15일까지 이어져, 이른 아침에 시위대열은 송촌리를 떠나 덕소리(德沼里)로 행진하였다. 이들 시위대열에 가담한 이래한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만세운동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위를 저지하고자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일본 군경에 붙잡혔다.
이내한은 이 일로 인하여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과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약 11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9. 4. 25)
- 判決文(高等法院, 1919. 7. 5)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299∼300面
- 배나무 용진을 빛낸 선현들(배나무용진향토사연구회, 2000) 168·175∼176面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5. 31)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46∼147面
- 龍津3·1義擧記念碑(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