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남 덕천군(德川郡)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5일 천도교인 현성재(玄聖才)는 기독교와 연락하여 양측 교인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포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방효준(方孝俊),김사진(金泗振)이 군중에게 조선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자, 이광수는 시위 행렬 선두에 서서 군중을 이끌고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행진하였다. 이들이 헌병분대로 몰려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자,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체포하였다. 그러나 6일 오후 1시경 다시 300여 명이 시위를 벌이자, 출동한 헌병 경찰은 50여 명의 시위 군중을 체포하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안 평안남도 장관이 평양에 병력 파견을 요청하여 7일 아침 현지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7일 하오 1시부터 600여 명이 또 다시 대대적인 시위투쟁을 벌이다가 4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 시위로 붙잡힌 이광수는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2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3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835~8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