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중화(中和) 사람이다.
대한제국의 육군 참위로 근무하다가,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을 당하자 이에 격분하여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1919년 3·1독립운동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의 훈련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11월에는 안동현 임시의사회에 참여하여 일하였다.
그리고 1920년 2월말에는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 구(金九) 밑에서 경호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20년 4월에는 안병찬(安秉瓚)을 총재로 하는 대한청년단연합회가 조직되자 다시 그 경호부장에 임명되어 활약하였고, 동년 9월 21일에는 임시정부 평북연통제의 경무사(警務司)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1920년 12월 대한독립단이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자 그는 사령장 조맹선(趙孟善)의 부관으로서 참모장 이 탁(李鐸)등과 함께 대일 무력 항쟁을 수행하는 일면 훈련국장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전념하였다.
1922년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였으나, 채상덕(蔡相德)·김유성(金有聲) 등이 통의부에서 탈퇴하여 의군부를 조직하는 내분이 발행하자 유응하(劉應夏) 등 전 한교회(韓僑會) 인사 13명과 함께 "통의부는 내분이 야기되고 신·구파의 대립중이므로 통일의 실현을 거둘 수 없기 때문에 태도를 선명히 하여 탈퇴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따로 대한군민부(軍民府)를 조직하는 등 만주에서 계속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행렬(行烈)은 부친의 뜻을 따라 항일투쟁에 앞장서 평양부청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8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88·254·259·44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5·43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708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7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277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46·79·10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50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67·284·436·6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