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소식은 전라남도 해남군에도 알려졌다. 해남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준하는 같은 학교의 재학생인 김규수(金奎秀)에게 만세시위를 권유했다. 이들은 4월 6일 해남 장날에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해남면(海南面)과 옥천면(玉泉面)의 졸업생들에게 시위를 권유했다.
4월 6일 직접 만든 태극기 80개를 가지고 해남시장으로 갔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시장에 모여 기회를 보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장꾼들도 호응하여 함께 만세를 외쳤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대정(大正)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가출장(假出場)의 건(件) 구신(具申)(해주형무소장 : 1930. 2. 13)
- 즉결언도서(卽決言渡書)(해주경찰서장 : 1930. 1. 23)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1. 22, 2. 17)
- 매일신보(每日申報)(1930. 1. 2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633~6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