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다.
을사조약이 늑결되고 이어 정미7조약(丁未七條約)과 군대해산이 강행되는 등 일인들의 횡포에 의하여 국권이 마구 유린됨에 1907년 9월 13일 진안 마이산(鎭安 馬耳山)에서 동지 수십 명을 규합하여 대한제국 만세를 삼창한 후 이석용(李錫庸) 의진에 참가하여 보급책(補給責)으로 활동하였다.
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한반도가 식민지로 전락되자 의병장 이석용과 더불어 국권회복을 위한 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대략 밝혀진 사실만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12년 10월 22일 이석용의 지시로 김필주(金必珠)·김운서(金雲瑞)와 같이 무장하고 장수군 내진면 월파리(長水郡 內眞面 月坡里)에 있는 면사무소에 돌입하여 공금수금원(公金收金員)인 이용구(李龍九)·육동기(陸東基) 및 면장 이순영(李順榮)을 구타하고 그들이 거둔 세금 133원과 면비 50원, 개인 소지금 28원 및 손 금고 2점 등을 거두었다.
1912년 12월 밤에 임실군에 살고 있던 강정수(姜正秀) 집으로 찾아가 복부에 총격을 가하고 군자금을 거두었다.
본래 강정수는 일경의 앞잡이로 학교를 운영한다 하여 고을 사람들로부터 돈을 긁어모아 사복을 취하여 원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1914년 체포되어 광주지방재판소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5년 7개월간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대구공소원 형사공소사건부
- 대구공소원 판결문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931·9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