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경기도(京畿道) 진위군(振威郡)에서는 1919년 3월 11일 병남면(丙南面) 평택역 앞에서 이도상(李道相)의 주도로 학생과 주민 등 약 300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31일에는 병남면 평택과 북면(北面) 봉남리(鳳南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봉남리(鳳南里)의 박성배(朴成伯) 등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고 주민들 설득에 나섰다. 유만수·김봉희(金鳳熙) 등 독립만세운동에 찬성한 주민들은 약 400명에 이르렀다. 유만수 등은 오후 4시경부터 오후 6시경까지 북면면사무소(北面面事務所), 봉남경찰관주재소(鳳南警察官駐在所)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들은 무력으로 시위대 해산를 해산시켰다.
유만수도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9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6월 21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6월 27일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6. 2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406~4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