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개성의 3.1만세시위는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 군중이 합세하여 1,0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도 송도고등보통학교와 호수돈여학교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는 시민들 약 600명이 합세하였으며, 밤에는 2,000여 명으로 불어나 시가행진과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개성에서는 3월 말경에 다시 만세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상도면에서는 3월 29일 밤 유기윤 등이 주동이 되어 300여 명의 시위군중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상도리에서 대성면 풍덕리 헌병분견소까지 만세시위 행진을 벌이고 헌병분견소를 에워쌌다.
유기윤은 상도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전신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1919년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5. 22)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19. 7. 28)
- 판결문(고등법원:1919. 10. 1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2권 194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8~21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