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과 4월 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구성군에서는 3월 11일, 30일, 31일과 4월 1일 군내 남시(南市), 신시(新市) 등지에서 시위군중과 일본 경찰·헌병이 충돌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3월 31일과 4월 1일 양일간의 만세시위운동은 약 6,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의 시위로 치열한 항쟁을 전개하였다.
3월 31일은 남시 장날이었다. 이날 정오를 기하여 5,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 7명과 피검자 5명이 발생하였다. 같은 날 신시에서도 정오를 기하여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투쟁을 벌였다. 다음날인 4월 1일 남시에서는 전날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가 강제 해산되었으며, 신시에서는 전날보다 많은 1,500여 명 이상의 군중이 시위투쟁을 재개하였다. 흥분한 시위군중은 더욱 격렬하게 항쟁하였으며, 경찰이 발포하여 군중 측에서 부상자 5명, 피검자 30명이 발생하였다.
원이상은 이와 같은 구성군의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59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