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0일 황해도 서흥(瑞興)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박이도(朴履道)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당초 예수교 전도사인 김성항(金成恒)이 평양(平壤)에서 윤종식(尹宗植)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교부받아 이곳 교회에 전달하였다. 이에 그는 원용팔(元用八)·박이도 등의 동지들과 연락하여 3월 10일 동군(同郡) 도면(道面) 능리(陵里)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일헌병대에 발각되어 그는 9일 저녁 6시경 원용팔 등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이튿날 박이도 역시 교회당에서 능리로 나가다가 검속되었다.
한편 서흥 지역의 애국지사들은 사태를 재수습하면서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오후 4시경 능리 시장에서 김두익(金斗益)·구성빈(具聖彬) 등이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하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독립만세 소리와 휘날리는 태극기의 모습에 감동한 주민들과 장꾼들이 합세하니 시위군중은 200명을 넘었다.
원용목은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59~260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