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19년 3월 1일 평안북도(平安北道) 선천군(宣川郡) 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황해도(黃海道) 봉산(鳳山) 출신인 오택렬은 사립신성학교 학생으로서 선천 시내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항소를 제출하면서 정의와 인도로 세계를 통치하는 시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에 대한 압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파리강화회의에서 제기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919년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항소했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 1919. 7. 1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852∼85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2권 442∼44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33∼2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