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장성 (長城) 에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 활동하고 1927년 10월 신간회 (新幹會) 장성지부 (長城支部) 를 조직하여 조직부장 (組織部長) 에 선임 활동하였으며 1928년 10월에는 신간회 창립 일주년 기념행사 (新幹會創立一週年記念行事) 로서 애국 구호문 (愛國口號文) 을 인쇄 살포하다 체포되여 광주지법에서 1년형을 받고 출옥 후 1930년에는 항일결사행동대 (抗日決死行動隊) 를 5명으로 결속하고 전남 각지의 일제관공서를 습격파괴계획중 체포되여 광주지검 (光州地檢) 에서 6월 미결구속 (未決拘束) 을 당하는 등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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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27년 10월에 신간회 장성지회(新幹會長城支會)를 조직하여 조직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장성지방의 유지 100여명을 규합하여 조직을 확충하였다. 이듬해 10월에는 신간회 창립 1주년 기념행사로서 군중집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국권회복(國權恢復)'·'주권독립(主權獨立)'의 애국구호를 담은 전단을 인쇄하여 배포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이로 인하여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년에는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농촌계몽에 전력하였으며, 신간회원 결사행동대(新幹會員決死行動隊)를 결성하여 전남 일대의 일제 관공서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다가 붙잡혀 6개월간 구금당하였고, 이듬해인 1931년에는 장성에서 효성단(曉星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1932년에는 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청년회(靑年會)·농민회(農民會)·협동조합(協同組合) 등을 결성하여 농민의 조직화와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호남절의록 삼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