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창된 민족자결주의는 세계 약소민족에게 조국독립의 희망을 주었다. 이에 고무된 민족대표 33인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고 이는 곧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3월 12일 황해도 해주군 추화면(秋花面) 약현리(藥峴里) 청단(靑丹) 장터에서 6백여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만세시위는 청단시장의 상인 김택근(金澤根)·김은택(金恩澤)과 청년 조인배(趙仁培) 등이 주도하였다. 여기에 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오무성과 서병하(徐丙夏)·엄성대(嚴成大)·이봉소(李鳳韶) 등이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끌었다. 오무성은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6. 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5집 588~5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