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단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헌병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일에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자,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여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순도기념일(殉道紀念日)인 3월 10일을 기하여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각 면(面)에서 3백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교당에 모여서 먼저 교조 순도기념식을 거행하고, 이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선두로 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염석하도 시위군중과 함께 천도교당을 출발하여 용현리(龍峴里)와 하서리(下西里)를 거쳐 헌병대로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군중은 점차 늘어 1천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헌병대에 도착한 시위군중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신랄하게 규탄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에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강제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서봉화(徐鳳化)가 앞으로 나서며 헌병대장에게 우리나라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헌병대장이 태극기를 든 서봉화의 어깨를 군도로 내리쳤다. 그러나 서봉화는 가슴을 풀어 헤치며 계속 항거하다가 결국 배를 찔려 순국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군중들은 분에 못 이겨 헌병대로 달려들어갔다. 이에 헌병들은 군중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이 과정에서 염석하는 헌병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三·一運動實錄(李龍洛) 968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4卷 336面
- 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 下卷 553面
- 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 上卷 574面
- 三·一運動秘史(李炳憲) 991面
- 新人間(1969. 4) 74面
- 每日申報(1919. 3. 20)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721∼722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350·35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