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때 작성한 「독립선언서」가 전국으로 전달되면서 각지의 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영호(申鑅浩)는 이때 ‘우리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함’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입수하여 청주군 청주농학교(淸州農學校)로 돌아왔다. 기숙사 학생들에게 서울에서는 학생들이 휴업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이에 청주농학교에 재학 중이던 양재성은 신영호와 함께 청주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가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3월 9일 위 문서를 청주군 청주면(淸州面) 청수정 김현구(金顯九)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300여 매 인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1919. 4. 9)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5. 5)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5. 31)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1101~11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