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3일 낮 목사 송현근(宋賢根)은 김병주(金炳疇) 등과 함께 상사리(上四里) 사천시장(沙川市場)에서 군중을 향해 「독립선언서」를 읽어 독립운동을 고취하려한 혐의로 사천헌병주재소에 구금되었다.
다음날 아침 원장리에서는 임이걸(林利杰)의 주도 아래 양희언 등이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송현근은 최능현(崔能賢) 등과 함께 원장리에 이르러 사천장터에서 함께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제의하였다. 그들은 출발에 앞서 공립보통학교 및 야소교회당 등에서 최능현·임이걸 등이 「조선독립선언서」 낭독 및 독립운동에 노력하겠다는 연설을 하고 사천헌병대에 구금되어 있는 10여 명의 동지를 구하기 위하여 사천시장으로 향했다. 사천시장 북쪽에 도달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본 헌병이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양희언은 1919년 3월 4일 반석면 원장리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사천에서 일본 순사를 처단하는 의거를 실행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7년 9월 3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평양복심법원:1919. 11. 4)
- 판결문(고등법원:1919. 12. 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26~2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