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동경 전수대학 재학중인 1940년 9월에 박인석(朴寅錫)·채용석(蔡用錫) 등과 함께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뜻을 모으고 투쟁방안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들은 먼저 동지포섭에 힘을 쏟아 전수대학 내 동급생인 정종락(鄭鍾樂)·김원식(金源植)·권오황(權五煌) 등을 동지로 규합하면서 1941년 11월까지 전후 수십차례의 모임을 갖고 조선인의 교육문제와 민족차별 등에 대한 토론을 거쳐 독립의식을 길러갔다.
그리고 이러한 동지결집의 발전으로 동년 11월에는 그의 주도로 항일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을 결성하였다. 이때 그는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패전기의 혼란을 독립의 기회로 삼아 조선민중을 규합하여 일제히 봉기할 것을 역설하였다.
한편 그는 1941년 6월경 일시 귀국했을 때 고향의 동지들에게 동경(東京)에서의 항일활동 상황을 소개하고 "우리조선독립그룹"과 같은 형식의 공주(公州)그룹을 조직케하였다.
이렇게 국내외에 조직을 결성한 이들의 행동방략은 주요건물의 파괴 및 식량창고의 방화, 수도 및 도로를 파괴함으로써 일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또 회원은 활동구역을 각기 분담하였는데 그는 일본 신전(神田)지역을 맡아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그러던 중 동조직의 활동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43년 3월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3월에 일본형사지방재판소에 기소되어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특고월보(1943. 6월분)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8권 82∼85면
- 조선민족독립운동비사(坪江汕二) 231면
- 현창석과 관련된 예심종결결정(1943. 9. 17 동경형사지방재판소)
- 가출옥증(동경구치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1354∼135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183∼1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