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에서 이만집(李萬集) 등이 추진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일 기독교계의 유지 이만집은 이용상(李容祥)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만집은 김태련(金兌鍊),김영서(金永瑞) 등과 장날인 8일 오후 3시를 기하여 서문(西門) 밖 시장에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합의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거사를 계획하였다. 8일 오후 3시경 대구고보와 계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 행렬이 종로통을 지나 달성군청 부근까지 진출했을 때, 대구 80연대 일본군은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시위대를 겨누었다. 놀란 시위대가 멈추자, 일본 군경은 닥치는 대로 시위 군중을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힌 안의중도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347~352면, 제9권 271면
- 刑事事件簿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9. 4.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66~1271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