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9일 청주농업학교(淸州農業學校)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계획에 동참하여 경고문을 인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당시 서울 중앙학교(中央學校)에 다니던 신영호(申영浩)는 고향 청주로 내려오는 길에 수원에서 ‘아(我) 이천만 동포에게 경고함’이라는 제목의 독립사상 고취 경고문을 입수하여 3월 9일 아침 청주농업학교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신영호는 이 학교 학생인 오석영(吳錫永) 등에게 이 경고문을 건네주며 서울에서는 중학 정도 이상의 학교는 남녀를 불문하고 휴교하고 독립만세를 절규하여 열광하고 있으니 이곳 청주에서도 서울 못지 않은 열성을 지니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였다.
청주농업학교 학생이던 오석영·이수천(李壽千)·이요습(李要習)·서상경(徐相庚)·양재성(楊在成) 등은 이에 찬동하여 우선 신영호가 준 경고문을 인쇄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이날 청수정(淸水町)에 있는 김현구(金顯九)의 방에서 등사에 착수하였다. 이때 동교 학생이던 신태동은 임창수(林昌洙)·이철우(李喆雨)·박승하(朴勝夏) 등 학생들과 함께 김현구의 집으로 가서 함께 경고문 3백여 매를 등사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5. 5)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101∼11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87면
- 判決文(高等法院, 1919. 5. 31)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9∼8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53면
- 每日申報(1919. 4. 14)
- 判決文(公州地方法院:1919. 4. 9)